패션보다 스타일이 더 패셔너블했던 2000년대 초 강남.
디자이너 홍승완의 스위트 리벤지는 스타일 있는 남자들의 은밀한 부티크였고 2010년 해외를 겨냥한 로리엣(Roliat)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일본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마니아를 형성해왔다. 조용한 성북동 골목에 작고 스타일리시하게 자리한 로리엣 아틀리에에서 디자이너 홍승완을 만났다.

고즈넉한 골목에 이렇게 예쁘게 자리 잡은 아틀리에를 보니 공간에 대해 먼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외관부터 로리엣을 입는 사람의 정취가 묻어나는 느낌이다.
로리엣은 20세기 초의 영국 테일러링 감성을 현대적으로 표현해왔다. 남자들이 시가를 피우거나 스카치를 마시는 영국 근교의 작은 살롱 혹은 잡화점 느낌을 연출해보자 했다. 새것보다는 손때가 묻어나는, 약간 거칠고 때로 지저분하게도 보이는 느낌. 로리엣의 옷도 그러하다. 로리엣은 테일러(Tailor)를 거꾸로 해서 만든 이름이다.

조용한 성북동 골목에 위치한 아틀리에.

과거 한 인터뷰에서 홍승완을 루스한 댄디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본인의 디자인을 정의해본다면?
근대적 복식의 기준이 만들어진 1900~1930년대에 포커싱해왔기 때문에 댄디즘이 라는 말도 괜찮은 것 같다. 다만 당시의 포멀 룩에 캐주얼한 느낌을 더했다. 슬릭하게 갖춰진 느낌보다는 소재의 질감을 살려 자연스러운 구김을 더하는 방식으로 빈티지 또는 노스탤지어한 느낌을 살린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스위트 리벤지부터 로리엣까지 옷 잘 입던 셀러브리티가 여럿 떠오른다.
몇 친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배우 류승범은 워낙 옷을 좋아해 처음 스위트 리벤지를 시작할 때부터 옷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스위트 리벤지 쇼에 모델로 서기도 했고. 캐주얼 브랜드 옴펜을 비롯해 여러 작업을 함께 한 배우 봉태규는 류승범 친구로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하시시박의 웨딩드레스를 만들기도 했고. 그들 취향이 워낙 확실해서 원하는 대로 만들었는데 큰 이슈가 되었다. 최근에는 워낙 옷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동휘가 자주 찾는다. 발렌시아가가 너무 잘 어울리는 그에게 로리엣도 잘 맞는 게 신기하다.

그들에게 어딘지 비슷한 느낌이 있다.
속 깊고 점잖은 친구들이다. 소탈하고 예의 있지만 자기 스타일이 확실하다.

개인적으로 로리엣 특유의 서정적인 디자인에서 오는 여유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로리엣을 입는 사람들을 봐도 그런 듯하다. 삶의 시간이 너무 빠르니까 옷에서 여유를 찾는 사람이 입는 것 같다.
일본 바이어들은 ‘리얼 클로스(Real Cloth)’라는 단어를 쓴다. 트렌드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패션보다 ‘그냥 옷’이라는 개념인데 그 말을 빌리고 싶다. 오롯이 자기에게 잘 맞고 편안한 옷. 여기에 로리엣은 오더메이드를 비롯해 소규모로 제작하기 때문에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마니아도 찾는다. 적어도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날 확률은 없다.

오늘 입은 옷은?
1920년대 남자들이 즐겨 입던 라운드 칼라의 베이식한 옥스퍼드 셔츠다. 이번 시즌에 만든 옷이지만 마치 아버지에게 물려 입은 듯 빈티지한 느낌으로 두 번째 단추만 다른 것으로 달았다. 여기에 편안한 와이드 팬츠.

영감을 받는 곳은?
매 시즌 해보고 싶은 것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인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 핸드메이드 를 좋아한다. 로리엣의 옷은 우리 옷만 20~30년 만들어온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여든이 넘은 분도 계시다. 해외에서 로리엣을 대표하는 것도 핸드메이드 니트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하는 작업이 로리엣을 잘 표현하는데, 입는 사람을 위해 정성스럽게 ‘짓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소규모 수작업을 통한 일종의 지속 가능성이 흥미롭다.
유럽에는 여전히 소규모 부티크가 많다. 독일의 프랭크 레더라는 브랜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했던 독일 장교 군복을 재조립해 패브릭을 만든다. 지금 생산한 옷인데 원단 자체로 1950년대 느낌이 나는 거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영국 브랜드 폴 하든은 빅토리아 시대 귀족의 창고에 보관되어온 오래된 패브릭을 사용한다. 일종의 업사이클링이다. 그런 옷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이 자연스레 로리엣과 연결되는 것 같다.

로리엣 역시 소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꼼 데 가르송, 사카이 등의 프린트를 개발하는 작은 스튜디오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 일본은 좋은 소재가 많은데 로리엣 같은 소규모 아틀리에도 프린트를 개발할 수 있어 디자이너 입장에서 고마운 곳이다.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 이번 시즌에는 1900년대 초 파자마의 패턴을 활용해봤다. 오늘 입은 셔츠와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소재와 패턴의 패브릭이 매치되어 마치 아버지에게 물려 입은 듯 빈티지한 감성을 더한다. 예전에는 대대로 물려 입은 옷의 해지거나 구멍 난 곳을 메우려고 다른 패브릭을 덧대어 많이 입었는데, 몇 번이나 리폼을 더한 듯한 느낌이다.

로리엣과는 결이 다른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CJENM의 골프웨어 브랜드 장 미셸 바 스키아, 남성복 다니엘 크레뮤 등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대중적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동시에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대기업과의 작업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소규모의 개인적 작업인 로리엣과 많은 차이가 있다. 기존에 해오던 것과 전혀 다른 커머셜한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로리엣이 개인의 취향에 집중한 디자인이라면, 골프웨어와 남성복을 할 때는 남성만큼이나 이를 셀렉트하는 아내의 취향도 고려해야 한다.(웃음) 골프웨어 작업을 하면서 골프가 취미가 되기도 했다. 디자이너로서 여러가지 성장과 확장을 도모하는 귀한 경험이다.

contributing editor Hong Hyeonk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