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 대한민국 패션계에 날아든 가장 반가운 소식은 바로 ‘하우스 우영미’의 탄생일 것이다. 디자이너 우영미가 자신의 컬렉션과 꼭 닮은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공간을 선보인 것. ‘하우스 우영미’로 명명된 이 공간은 그녀가 추구하는 미학과 브랜드 비전을 직관적으로 담고 있다.

중세 유럽 건축물의 대표 양식인 루버 공법으로 외관을 장식한 아우스 우영미. 강렬한 레드 컬러의 파사드가 시선을 압도한다.

광진구 아차산 자락 끝에 길고 가느다란 선으로 빼곡히 둘러싸인 거대하고 강렬한 빌딩이 들어섰다. 오픈한 지 채 몇 이 지나지 않아 아차산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하우스 우영미’가 그 주인공이다. 1층에 들어서면 까만색 조약돌이 연상되는 질감과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원형 리셉션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그 뒤편으로 늘어선 책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아트 북과 오브제가 진열되어 있고, 책장 앞의 테이블 양 끝에는 우영미의 팬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하이퍼 리얼 마네킹이 늘 그렇듯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두면 강렬한 레드 컬러가 펼쳐지는데 100여 명의 직원과 외부 스태프들이 자유롭게 미팅을 하고, 때로는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련된 다섯 개의 미팅 룸이다.
미팅 룸을 둘러싼 빨간 커튼의 주름은 빌딩 전체를 감싼 루버 공법의 세로선과 일맥상통한다. 리셉션 왼쪽으로 방대하게 펼쳐진 아카이브 룸에는 지난 35년의 결과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아카이브 룸 중앙은 2016년 아티스트 마티아스 키스(Mathias Kiss)와 우영미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인 ‘Out of Time’이 금빛으로 시선을 붙잡는다. 2층부터 6층까지는 우영미와 솔리드 옴므의 작업실로 채워져 있다. 프레젠테이션 룸, 미니 스튜디오, 니트와 액세서리 디자인팀, 재단실 등 컬렉션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부서가 이 공간에 있다. 디자이너 우영미는 늘 이런 공간을 꿈꿔왔다고 한다. “강남에서는 모든 부서를 한곳에 모으는 것이 불가능했어요. 100여 명의 직원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죠. 디자인은 유기적인 소통을 통해 완성되는 작업이다 보니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부딪히는 상호작용을 통해 결과물이 탄생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어요. 하우스 우영미가 완성되고 나서 비로소 많은 부분이 편안해졌다고 느껴요.” 디자이너 우영미의 아이디어와 손길이 곳곳에 닿아 완성된 하우스 우영미의 이야기, 한국을 넘어 전 세계 남자의 패션 바이블이 된 우영미의 디자인,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디자이너로서의 우영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하우스 우영미의 하이라이트는 35년간의 방대한 아카이브다. 2016 S/S 시즌 아티스트 마티아스 키스와 컬래버레이션한 작품 ‘Out of Time’과 디자이너 우영미.
직원들의 휴게 공간으로 꾸민 테라스.

하우스 우영미의 건축 디자인이 iF 디자인 어워드 2023에서 산업건축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하우스 우영미를 공개한 뒤 아마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아닐까 싶은데, 하우스 시그니처 컬러로 레드를 선택한 이유는?
같은 질문을 꽤 많이 받았다. 내가 레드랑 어울리지 않나 보다.(웃음)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레드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는 블랙, 그레이, 네이비 등 좀 더 무게감 있고 묵직한 컬러를 좋아했다. 레드 컬러가 나에게 잘 안 어울리기도 했고, 레드 컬러 특유의 팬시함이 싫었는데 어느 순간 레드 컬러가 에너지로 느껴졌다. 내 마음에 꼭 드는 레드 컬러를 찾기 위해 컬러 칩을 들고 햇빛이 강한 낮에도 비춰 보고, 깜깜한 밤에도 나가보고 그랬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컬러에 이어 위치도 예상외였다. 아차산이라는 지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큰 공간’이었다. 스태프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공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루 종일 협업하거나 필요에 따라 논쟁도 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쾌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른데 공간까지 좁고 답답하면 필요 이상으로 피로하다. 따라서 빨리 지치지 않으려면 환경이 중요하다. 겉모습이 근사한 플래그십 스토어나 본사가 아니라 쾌적한 공간 그 자체가 필요했다. 나 역시 내 삶을 덜 소모시키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공간을 원했다. 서울 곳곳은 물론 서울 외곽까지 수많은 장소를 살펴보던 중 지금 이 장소를 만났다.

하우스 우영미로 온 뒤 변화가 있는가?
조급함이 많이 줄어들고 한결 편안해졌다. 덜 소모되는 느낌이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해 만족스럽다.

하우스 우영미가 만들어진 과정이 궁금하다. 디자인에 얼마나 개입했나?
평소 건축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건축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오브제를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하우스 우영미를 기획하고 만들면서 거의 매 주말 건축 사무실에 갔다. 긴 시간 미팅하면서 의견과 바람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테크니컬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디자인적인 면은 거의 대부분 내 의견대로 진행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건물 외관에 긴 판을 수평으로 배열한 루버(Louver) 파사드 공법을 사용한 이유 또한 궁금하다.
본래 이 건물이 매우 낡았다.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라 낡긴 했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없어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잡았다. 루버는 유럽 중세 건축물에 많이 쓰였던 공법이다. 여러 방식을 고려했는데 디자인적으로도 현실적인 면으로도 루버 공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루버를 레드 컬러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우
스 우영미처럼 곡선 형태로 하는 경우는 더더욱. 외관의 곡선을 만들기 위해 아마 50번도 넘게 스케치했던 것 같다.

실내 공간 구성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아카이브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가장 고민이었다. 35년 간의 아카이브 양이 정말 방대하다. 그걸 어떻게 구분하고, 보관하고, 필요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고민 끝에 1층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리셉션과 그 뒤쪽을 도서관처럼 꾸몄다. 도서관 사서에게 책을 빌리듯, 아카이브 데이터베이스에서 옷을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하우스 우영미의 6층에 오르면 정면으로 아차산이 펼쳐진다. 도심 속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명상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그 고요함이 너무 마음에 들어 처음에는 6층을 내 공간으로 꾸미려고 했다. 그러던 중 직원들이 나를 만나러 6층까지 올라오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이곳으로 오기로 결정했는지 되짚어보았고, 직원들과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소통하기 위해 결국 내 오피스는 직원들의 동선을 고려해 2층에 두었다.

디자인과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MZ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세대와 이전 세대의 옷 입는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요즘의 ‘옷 입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 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인류다. 생각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 브랜드의 이미지 혹은 디자인에 대해 훨씬 원초적이고 솔직하게 접근한다. 브랜드의 배경은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MZ세대는 날 때부터 옷 입는 방식에 대해 트레이닝된 세대다. 그들에게 패션은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이다. 오픈 마인드 그 자체라고 할까. 디자이너로서 그걸 지켜보는 것이 꽤 재미있다. 어떤 친구는 본인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좀 숙성되어 표현되고, 또 어떤 친구는 숙성되지 않은 채 조금 어설프게 표현된다는 정도의 차이다. 그들은 패션에 편견이 없고 굉장히 포용적이다.

시대와 트렌드가 너무 급변하는 부분에 보수적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변이다.
과거 우리 시대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소 억압적이었기에 오히려 부작용이 있었다. 요즘은 본인을 표현하는 데 한없이 자유롭다. 어떤 제약이나 제한 없이 패션을 즐기는 요즘 세대를 지켜보는 일이 매우 즐겁고 또 부럽기도 하다.

두 개의 분리된 건물을 하나로 합치고, 루버공법을 이용해 보자기로 싸듯 외관을 감쌌다.
모델 피팅 후 바로 촬영할 수 있도록 프레젠테이션 룸 바로 앞에 스튜디오 공간을 마련했다. 컬렉션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하우스 우영미 안에서 끝낼 수 있다.
벽과 바닥의 따스한 색감의 러그, 코트를 만들고 남은 천을 덧씌운 의자 등 편안한 분위기로 꾸며진 디자이너 우영미의 집무실.
아카이브 룸에는 하우스 우영미 탄생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한 35년 간의 컬렉션이 모여 있다.
품평회가 한창 진행 중인 솔리드 옴므 프레젠테이션 룸.

지난 35년간 수천 벌의 의상을 디자인했을 텐데 그중 특히 자부심을 가지는 아이템이 있는지 궁금하다.
모든 디자인이 그렇지만 한 끗 차이로 밸런스가 달라진다. 나의 경우 그 미묘한 밸런스를 잘 다루는 아이템을 꼽자면 팬츠다. 어떻게 하면 다리가 길고 곧아 보일 수 있을지, 디자인적 밸런스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내 관심사는 ‘남자의 몸을 어떻게 잘 보강해줄까?’였다. 남자의 몸이 갖는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디자인을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핏을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왔다.

한국 남성에게 디자이너 우영미는 절대적 존재다. 패션, 디자이너, 트렌드를 모르는 이도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어떤 마음으로 디자인하는지 궁금하다.
디자이너란 누군가가 옷을 입을 때 그 전보다 조금 더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매를 조금 길게 만들면 팔이 길어 보이지 않을까?’ ‘여기를 조금 줄이면 더 멋있어 보일 텐데’ 하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하려고 한다. 결국 패션은 옷을 입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니 내 옷을 입는 사람이 멋져 보이게 하는 게 내 일이다.

한 분야에서 35년간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나?
원동력이라기보다 성격 자체가 집착이 강한 스타일이다. 포기를 잘 못 한다. 의도적으로 한 우물을 파려고 한 것보다는 아마 여러 우물을 팔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그랬을 거다.(웃음) 멀티태스킹이 잘 안 된다. 디자인만할 줄 알지, 경영에 대해서도 0점이다. 디자이너로서는 50점!

디자이너 우영미가 받기에는 너무 야박한 점수가 아닌가?
열심히 일한 건 사실이니 그나마 50점이라도줄 수 있다.

디자이너 우영미가 아닌 인간 우영미는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궁금하다.
나는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다. 살면서 크게 일탈해본 적도 없다. 정해놓은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일하지 않을 때는 주로 수행을 한다. 명상을 하거나 불교 관련 책을 읽거나 108배를 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이 굉장히 소모적이고 절대적인 답이 없기 때문에 항상 자기 갈등이 있고 자기비판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수도 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 한다. 내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폐해지게 된다. 내 마음을 보듬고 챙기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성향이 브랜드 우영미, 솔리드 옴므와 잘 맞닿아 있는 듯하다. 디자이너 우영미의 한결같은 온도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뢰가 간다고 할까.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는 믿음이 생긴다.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고맙다. 늘 비즈니스적으로 내 부족한 점을 생각해왔는데 그런 말이 큰 힘과 위안이 된다.

하이퍼 리얼 마네킹이 시선을 사로잡는 1층 라이브러리 룸.
우영미와 솔리드 옴므 컬렉션의 재료가 되는 수많은 실.
소재, 컬러, 수정 사항 등이 꼼꼼하게 적혀 있는 솔리드 옴므 노트.
우영미의 대표 아이템 중 하나인 플라워 프린트 반팔 티셔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