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건너로 스위스가 시작되고 사방에 알프스산이 펼쳐지는 코모 호수는 이탈리아 북부를 방문하는 여행객들 사이에 꼭 방문해야 할 여행 스폿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통은 밀라노를 방문하면서 기차를 타고 반나절 찍고 오는 식인데 오래 머물며 구석구석 다녀보면 그렇게 다녀오기엔 너무 아까운 휴양지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랜드 호텔 빌라 세르벨로니에서 내려다보이는 코모 호수 풍경.
코모 호수를 배경으로 그랜드 호텔 빌라 세르벨로니에서 치른 나의 웨딩 세리머니.
  • 그랜드 호텔 빌라 세르벨로니

내가 처음 벨라조를 알게 된 것은 동호대교 아니면 영동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간판에서였다. 건물 꼭대기에 짙은 남색으로 거대하고 무미건조하게 올라앉은 ‘벨라지오‘라는 글씨를 보며 이탈리아말이니까 꼼빠니아나 메르꼴레디처럼 패션 브랜드쯤 되겠거니 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내가 ‘진짜’ 코모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벨라조에서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고. 대부분의 사람에게 결혼식이 그렇겠지만, 빌라 세르벨로니에서 치른 나의 웨딩 세리머니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해주었다. 곧 다가올 결혼 6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지난날 크고 작은 부부싸움을 하면서 너무 완벽했던 결혼식으로 위안 삼거나 결혼 초반에 복을 몰아서 쓴 건 아닐까 탓했을 정도니까. 코모 호수 주변의 작은 도시들 중에서도 ‘코모의 진주’라 불리는 벨라조는 위시본(Wishbone) 모양의 코모 호수가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꼭짓점에 자리 잡고 있어 호수 사방으로 알프스산이 펼쳐진다. 단연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곳이다. 진주알처럼 반짝이는 벨라조는 코모의 여러 도시 중에도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여느 이탈리아 도시처럼 교회를 중심으로 작은 광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발달했는데, 호수 곁에 자리한 빌라 세르벨로니는 코모의 빌라 중에서도 아름답고 관리가 잘된 곳으로 손꼽힌다. 150년 전부터 내부를 호텔로 운영하고 있어 이탤리언 서머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우리 부부와 가족은 빌라에서 2박을 묵었는데, 수영장 뒤에 꾸며진 프라이빗 정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코모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차 코레아나(Terrazza Coreana)에서 밤 11시까지 저녁 식사를 했으니 빌라가 호텔 이상으로 친근하게 느껴질 만하다. 1850년 베르가모의 귀족 프리초니(Frizzoni)가 당대 최고의 북이탈리아 건축가들을 모아 4년 꼬박 빌라를 짓고 그녀의 생일에 맞춰 오픈한 것이 빌라 세르벨로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지금까지 150년 동안 호텔로 운영되었고 윈스턴 처칠, 존 F. 케네디, 알 파치노 같은 유명 정치인과 할리우드 스타의 휴가지가 되기도 했다. 벨라조의 명소로 꼽히는 이 호텔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미스트랄 레스토랑(Mistral Restaurant)으로 이탈리아 최초의 분자 요리를 도입한 에토레 보키아(Ettore Bocchia) 셰프가 이끈다. 5성급 호텔 레스토랑만의 클래식한 플레이팅, 분자 요리로 새롭게 해석된 식재료의 조합을 맛보고 싶다면, 무엇보다 식사 중 코모 호수의 뷰를 파노라마 앵글로 만끽하고 싶다면 여행의 피날레로 추천한다.

  • 빌라 데스테

알프스산맥에 둘러싸인 코모 호수의 숨 막히는 경치. 그 속에서도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빌라 데스테는 타임리스한 이탤리언 럭셔리의 살아 있는 예시다. 1568년 코모시(市)의 부유한 추기경 톨로메오 갈리오 (Tolomeo Gallio)의 별장으로 지은 이 고혹적인 건물은 1873년 호텔로 바뀐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의 귀족과 상류층이 사랑하는 독보적인 호텔로 자리 잡았다. 1박에 최소 100만원이 넘어가지만 그에 걸 맞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호화로운 시설과 빈틈없는 서비스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며 브래드 피트, 알 파치노 등 글로벌 스타가 즐겨 찾는 호텔로 잘 알려져 있다.

코모 호수와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빌라 데스테의 152개 객실은 호텔의 두 메인 건물인 카디널 빌딩(Cardinal Building)과 퀸스 파빌리온(Queen’s Pavilion)에 나뉘어 있다. 넓은 공간감과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객실들은 뮤지엄에서나 볼 법한 유화 작품, 빈티지 가구, 대리석 화장실, 그리고 벨벳과 브로케이드 원단으로 꾸며져 있다. 시대물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한 인테리어는 고상하면서도 푸근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총 25에이커에 펼쳐진 아름다운 정원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공간으로 꼽히며 1913년 국립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00살이 넘은 나무들, 그리고 그 수를 가늠할 수 없는 수려한 식물과 꽃은 완벽한 동화의 장면처럼 연출되어 웅장한 코모 호수의 전경과 조화를 이룬다. 그 사이사이에는 빌라 데스테 내 여러 레스토랑과 바의 헤드 셰프 미켈레 잠바니니(Michele Zambanini)가 직접 기르며 요리에 사용하는 각종 허브가 자리하여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호텔 내 세 곳의 레스토랑, 두 곳의 바는 헤드 셰프 미켈레 잠바니니의 엄격한 지휘 아래 운영되며 어느 시간대에 먹어도 좋을 다채로운 메뉴로 가득하다. 호수의 파노라마 뷰를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는 메인 레스토랑 ‘라 베란다(La Veranda)’부터 지중해 음식을 캐주얼하고도 아름답게 전개하는 ‘더 그릴(The Grill)’까지 다양한 식당을 만나볼 수 있다.

  • 호텔 파살라쿠아

전통의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럭셔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호텔 파살라쿠아. 탁 트인 전망 덕에 코모 호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안드레아 루치니-파살라쿠아(Andrea Lucini Passalacqua) 백작이 지었으며 나폴레옹과 윈스턴 처칠도 머물렀던 18세기 빌라는 산티스(De Santis) 집안에 의해 유니크한 쉼터로 탈바꿈했다. 노란색 건물 외벽과 코모 호수를 배경으로 층층이 펼쳐지는 가든의 아름다운 조합은 호텔 파살라쿠아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테라스 형식으로 층층이 조성된 호텔 파살라쿠아의 정원. 각 층의 섹션마다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정원 한편에 자연 방사해 기르는 닭들이 아침 식사에 쓰일 달걀을 낳아주는 닭장이 있는가 하면, 식탁에 오가닉 야채를 공급해주는 텃밭도 있다. 올리브 나무 밭 안쪽에는 코모 호수를 바라보며 운동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피트니스 클럽이 있고, 정성스럽게 가꾼 장미 정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산책 즐겁게 해준다.

호텔 파살라쿠아 내 세 개의 건물에 나눠져 있는 24개의 방은 벨트라미 침구, 금박 거울 등 호화로운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움으로 무장했다. 명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객실 내부는 다양한 텍스타일의 조화와 로맨틱한 색감이 돋보인다. 스팀 트렁크에 신중하게 감춰진 TV, 다이슨 에어랩 멀티 스타일러 등 사소한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은 완벽함은 많은 이가 파살라쿠아로 다시 발걸음하는 이유다.

권위 있는 여러 이탈리아 가문을 위해 요리했던 호텔 파살라쿠아 내 여러 레스토랑과 바의 헤드 셰프 알레산드로 리날디는 심플하고도 깊이 있는 집밥 같은 음식 맛으로 테이블을 채운다. 호텔 식당의 분위기가 나기보다는 프라이빗 홈 다이닝 같은 느낌을 주며, 호텔 정원에서도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 현지에서 자라는 제철 재료로 만든 클래식한 이탤리언 요리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을 세련된 풍미를 자랑한다.

가든을 따라 내려가면 고급스러운 초록색과 화이트의 대비가 눈에 띄는 수영장이 있다. 패션 에디터 출신 디자이너 JJ 마틴(JJ Martin)이 전개하는 브랜드 ‘라 더블 J’와 협업한 패브릭과 패턴이 특별함을 더하는 수영장에서는 파라솔부터 비치 의자, 하다못해 쿠션까지 지중해의 감성과 현대적 맥시멀리즘이 극대화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 위빌라즈

그림 같은 빌라에서 휴가를 보낸다면? 에어비앤비가 새로운 숙박의 지평을 열었다면 집을 통째로 렌트해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게 요즘 트렌드. 그간의 피로를 덜어내고 충전할 요량의 휴가를 원할 때는 빌라를 통째로 빌리는 방법도 있다. 럭셔리 빌라 렌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빌라즈는 코모 호수 전역의 44채에 이르는 빌라를 일주일 단위로 렌트해준다. 모든 방이 스위트급으로 방에서는 알프스산맥을 병풍으로 삼은 코모 호수가 내려다보이고 수영장과 정원을 포함한 모든 부대시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일부 빌라는 열 명도 투숙할 수 있고 방 수만큼 화장실이 갖춰져 있어 지인들과 숙소를 공유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럭셔리 빌라인 만큼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던 서비스가 옵션으로 탑재되어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출장 셰프가 준비한 식사를 즐기거나 전통 파스타를 함께 만들어볼 수 있다. 최고급 패브릭 생산지로 유명한 코모인 만큼 실력 좋은 재단사가 ‘코모 메이드 패브릭’을 들고 빌라로 찾아와 옷을 지어주기도 한다. 호수 요트 투어는 물론이고 밀라노, 스위스에 가고 싶다면 관광 가이드까지 마련해주니 다이내믹한 시간도 즐길 수 있다.

  • 레스토랑 라디치

제철 재료로 만든 로컬 요리는 신선할 뿐 아니라 지리와 문화의 특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일조량, 토질,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성격 같은 것 말이다. 이탈리아 음식은 한국 음식과 극과 극일 것 같은데 수년 동안 사계절을 반복해 이곳 음식을 먹어보니 또 그렇지도 않다. 물론 고기나 유제품이 훨씬 많이 등장하지만 계절에 맞는 식재료 궁합의 원리는 여기나 저기나 비슷하다. 우리가 한여름에 콩국수를 먹는다면 여기는 차가운 토마토 파스타를 먹는 식이다. ‘뿌리’라는 뜻의 라디치 레스토랑에 가면 야생에서 온 동식물 재료만을 이용한 이탈리아식 초자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미쉐린 스타 셰프 제이슨 애서튼(Jason Atherton), 누노 멘데스(Nuno Mendes) 등과 함께 필모그래피를 쌓은 미르코 가티(Mirko Gatti)가 이 ‘뿌리’의 주인. 지구, 불, 영토를 요리의 기본 요소로 삼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코모 전역의 농·축산가와 협력한다. 재료가 남으면 발효시켜 식초, 소스, 가룸 등으로 만들어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니 주방이 일종의 실험실같이 보인다. 메뉴는 자연 섭리에 따라 세 계절을 테마로 하여 만든다. 겨울 두 달 동안만 북부 바다에서 얻은 재료로 메뉴를 꾸리고 나머지 10개월은 코모 지역에서 나는 원료만 사용해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다. 아주 깊은 호수에 서식하는 모캐로 만든 요리, 밀랍과 야생 헤더꽃에 절인 훈제 산천어 요리는 지구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으니 꼭 체험해보길.

columnist Anna Young Roh
editor Kim Kyuwon

Images / Grand Hotel Tremezzo by Laura Benaglia, Dutch Suttikulpanich, Courtesy of Villa d’Este, Courtesy of Passalacqua, Michele Foti, Instagram(@ radici_restaurant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