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왜 아트를 사랑하는가?

최근 하이 패션 브랜드가 아트에 집착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패션이 현대의 동화라면 아트는 백마 탄 왕자님이다. 이들의 교집합이 만들어내는 꿈과 환상의 모험으로 가득한 패션 어트랙션에 줄을 설 시간.

컬렉션 소장품이 소개되는 ‘미술관 벽 너머(Hors-les-murs)’ 프로젝트를 통해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전시된 아티스트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작품.

요즘 ‘아트’에 비할 만한 유행이 또 있을까. 나는 여섯 살짜리 아들의 예술적 소양을 생각해 르코르뷔지에 건축이 테마인 건축 수업에 대기를 건 적이 있고, 알렉스 카츠 전시 때문에 좀체 들어갈 일이 없던 청담동 루이 비통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다. 양혜규, 다니엘 아샴의 작품 또한 갤러리에서 실제로 처음 본 것이 아니라 떡볶이가 맛있는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 인테리어로 접하게 되었다. 패션 인플루언서의 아트 취미 덕분에 집에 앉아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기 있는 아티스트, 알아야 할 작품 리스트를 체크하고, NFT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디지털 작품 <메타버킨(Metaberkin)>을 놓고 에르메스가 벌인 소송전 뉴스 때문에 NFT에 물음표를 품기도 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한때 패션의 영역이었는데 이제 아트가 바통을 이어받은 것 같다. 부와 특권을 고급스러운 취향의 수단으로 드러내는 럭셔리 비지니스로 말이다.
얼마 전 영국 <텔레그래프>지에 실린 ‘하이 패션이 아트 세계에서 새로운 후원자(Patron)가 된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은 1965년 이브 생 로랑의 그 유명한 몬드리안 드레스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미 위상이 견고했던 파리 패션계에서 자신만의 ‘더 나은 것을 찾아내겠다(I can find better)’는 젊은 천재의 해법은 아트에 있었으며 이후 이브 생 로랑과 함께 몬드리안의 이름 또한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는 것. 이어서 패션과 아트의 결합은 더 많은 부와 견고한 명성을 창출한 검증된 수단이었음을 이야기하며, 아트 플랫폼 ap8.art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네타포르테에 입점할 아트피스가 홈 섹션을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해줄 것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프리즈 아트 페어를 후원하는 매치스 패션, 2022년 개인 소장품으로 파리에 현대미술관인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를 개관한 케어링 그룹의 전 회장 프랑수아 피노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도쿄 하라주쿠에 위치한 루이 비통 매장은 쿠사마 야요이의 뮤지엄을 방불케 한다.

덧붙이자면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1998년 크리스티 경매 회사를 인수했고, LVMH는 2014년 파리에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undation Louis Vuitton)을 오픈했다. 또 에르메스의 아틀리에 에르메스(Atelier Hermès), 샤넬의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Chanel Next Prize), 로에베의 로에베 파운데이션 크래프트 프라이즈(Loewe Foundation Craft Prize) 등이 매년 패션 하우스의 이름으로 아티스트를 발굴·지원하고 있으니 하이 패션이 열렬한 예술 애호가이자 후원자로 활약하는 모습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현대판 메디치 가문의 지위를 선점하려는 패션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문화 사업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19세기 말 어느 사회학자가 재력과 과시적 소비에 관련해 “근사하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명예롭다는 뜻이다”라고 표현했는데 지금이야말로 아트가 가장 근사한 때가 아닐까. 아트가 집결하는 바젤, 프리즈 등 유명 아트 페어는 마치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를 순회하는 패션 컬렉션처럼 자리 잡으며 사교계 명사와 인플루언서를 불러 모으고, 럭셔리 비즈니스를 선두해온 패션계는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완벽한 파티 플래너 역할을 자처한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이 오픈했을 때 샤넬과 보테가 베네타 파티는 아트 페어만큼 이슈를 모았다. 여기에 RM, 지드래곤 등 A 리스트 명단까지 더해져 아트 신이 얼마나 젊고 다이내믹해졌는지, 다시 말해 패셔너블해졌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렇듯 아트가 핫해질수록, 패션과 아트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패션은 아트를 소재로 삼아 매력적으로 재창조를 이어간다. 예를 들어 에르메스에서 자투리 재료로 만든 ‘쁘띠 아쉬(Petit h)’ 컬렉션이 선보이는 예술적인 오브제는 패션일까, 아트일까? 프라다는 또 어떤가? 패션과 아트의 랑데뷔에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과거 <보그>지와의 인터뷰에서 “회사 이미지를 위해 예술을 후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다. 예술을 상업이나 마케팅 도구로 사용해 회사 이미지를 좋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적극적 행동주의자인 그녀는 미술, 건축, 영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패션의 범위를 아트로 확장해왔다. (프라다 덕분에 두 배는 유명해진)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한 밀라노의 복합 문화 공간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하나같이 콘셉추얼하고 아트적이어서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2012년 메트로폴리탄 전시의 제목이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미우치아 프라다의 불가능한 대화>였고 그 주인공이 프라다여야만 했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등 당대를 상징하는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한 드레스와 모자, 슈즈를 통해 패션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아트와의 경계를 허물었고, 그런 인물에 비견할 주인공으로 아직 미우치아 프라다를 능가할 사람은 없으니까.

미우미우의 2023년 F/W 런웨이 무대에 선보인 한국 아티스트 정금형 작가의 영상. ‘신체와 옷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작업했다.

한편 패션과 아트의 교집합이 만들어내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유희는 그 유례가 없어 더욱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 2010년 카니예 웨스트는 앨범의 재킷에 조지 콘도의 그림을 실었다. 이를 두고 <하입비스트(Hypebeast)>는 “이 앨범이 없었더라면 카니예는 그저 패션에 미친 뮤지션 정도로 남았을지 모른다.… 그저 패션에 미친 뮤지션 정도로 남았을지 모르는 그는 대중음악을 통해 전에 없던 현대미술 장르를 개척했다”면서 “스타일은 꼭 옷차림에 국한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지금 보면 선견지명이 있는 글을 쓴 것이다. 대중에게는 뮤지션으로, 아트 신에서는 큰손으로 알려진 퍼렐 윌리엄스는 최근 루이 비통 맨즈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뷔했다. 패션계를 들썩이게 만든 놀라운 뉴스를 발표하며 루이 비통은 이렇게 강조했다. “퍼렐은 음악, 아트, 패션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글로벌 아이콘이다”.
프랑스 사람이 썼다는 이유로 읽게 된 <돈의 지혜>라는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트의 상징적인 지위를 이렇게 소개한다. “예술은 본디 가장 사리사욕을 초월한 활동이었으나 이제 가장 수지맞는 장사가 되었다. 예술품은 진정한 미적 욕구인 동시에 경제적 지위의 한 요소가 되었다.… 피카소나 드가 작품을 사들이는 사람은 낙찰 금액이 밝혀짐으로써 더욱 확고해지는 명성도 함께 사는 것이다.
고가의 미술품 경매는 그들의 명예를 살려주는 전쟁이다. 그와 동시에 시장에 요란하게 난입한 젊은 작가의 작품이 고가에 팔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방향의 명예 전쟁이라고 할까. 예술가 쪽에서 두둑한 돈다발뿐만 아니라 반항의 아이콘이라는 명예까지 원하는 것이다. 그는 상징적 전복과 건실한 은행 잔고라는 두 작품을 동시에 완성한다(제프 쿤스, 아니쉬 카푸어,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 이야말로 럭셔리 패션이 닻을 내리고 싶어 하는 미지의 목적지 아닐까.

현대판 메디치 가문의 지위를 선점하려는 패션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문화 사업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19세기 말 어느 사회학자가 재력과 과시적 소비에 관련해 “근사하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명예롭다는 뜻이다”라고 표현했는데 지금이야말로 아트가 가장 근사한 때가 아닐까.

Conributing Editor Hong Hyunk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