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프리즈 서울이 키아프 서울과 동시에 열리는 첫 회에 한국 미술계는 특별한 모멘텀을 경험했다. 전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서울에 집중됐고 페어장은 연일 만원을 이뤘으며 갤러리로 수놓인 삼청동과 한남동은 매일 밤 미술인이 집결하는 거대한 파티 스폿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2023년 9월 6일부터 9일까지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두 번째로 제2회 프리즈 서울과 제22회 키아프 서울이 공동 개최했다. 운동장만 한 페어장 두 곳에 수백 개의 갤러리가 한데 모이는 더블 페어. 부스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고, 코엑스 밖에서도 열리는 흥미진진한 이벤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짜보았다.

1. 선택과 집중이 필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의 코엑스에서 동시에 열리는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은 약간 어긋나는 일시로 치러졌다. 프리즈는 9월 6일부터 9일까지, 키아프는 같은 날 시작해 10일까지 계속된다. 프리미엄급 미술 시장이 동시 다발로 펼쳐지는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아트 페어에서는 대개 VIP 타임을 별도로 마련한다. 두 페어 모두 9월 6일을 VIP만 입장할 수 있는 프리뷰 데이로 잡고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넉넉한 관람 시간을 보장한다. 비교적 호젓한 상황에서 페어를 관람하고 싶거나 부스를 지키는 전문적인 갤러리스트와 여유롭게 출품작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20만원가량 하는 VIP 티켓을 구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022년,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서울에서 페어를 개최한 프리즈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판매 역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는데, 첫날부터 일부 부스의 ‘완판 행진’과 함께 순항하며 65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판매 총액을 기록했다. 아트 페어에 가본 경험이 많지 않거나 사나흘 동안 열리는 페어에 단 하루, 특정한 시 간만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덜 붐비는 시간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작품 구매를 위해 방문한다면 페어가 오픈하는 오전 11시, 작품 관람에 더 목적을 둔다면 폐막 한두 시간 전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오후 6시께, 폐막 한 시간여를 앞둔 페어장의 기진맥진하고 루스한 공기를 좋아한다. 그 시간이 되면 관람객은 저녁을 먹거나 여러 갤러리에서 여는 행사에 참석하느라 삼성동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온종일 열성적인 아트 컬렉터를 상대하느라 녹초가 된 갤러리 디렉터들은 페어를 기해 서울을 찾은 아티스트 그리고 VIP 아트 컬렉터들과 프라이빗 디너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한결 가뿐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판매 혹은 갤러리의 정체성을 선전하기 위해 설치한 마스터피스를 방해 없이 천천히 관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프리즈 서울은 코엑스 3층 C, D홀에서 전 세계 120여 개 갤러리가, 키아프 서울은 A, B홀과 그랜드 볼룸을 포함한 1층 전체에 211개 갤러리가 참가한 다. 광활할 정도로 드넓은 공간에 동서남북으로 수십 개의 부스가 이어진 페어장에서는 아무리 열정이 드높은 미술 애호가라도 실시간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페어에 관한 정보를 미리 수집하며 가장 관심 있는 섹션을 점찍어두고 페어장을 찾는다. 페어장 입구에 비치해놓은 리플릿이나 플로어 플랜을 꼭 챙긴다. 관람을 마친 섹션 혹은 갤 러리를 사인펜으로 체크하며 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같은 섹션을 두세 번씩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 이머징 아티스트를 위한 자리

2003년 런던 리젠트 파크의 천막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프리즈 아트 페어. 오늘날까지도 새하얀 천막으로 대변되는 프리즈는 원래 동명의 잡지에서 비롯됐다. 현대미술 잡지를 창간한 매튜 슬로토버와 아만 다 샤프는 10여 년 후 잡지에서 다루던 작가를 미술 시장에 선보임으로써 그들의 지속 가능한 작품 활동을 돕고자 페어를 만들었다. “그들은 프리즈가 단순히 아트 마켓으로 기능하는 데에서 나아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좋은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건강한 미술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 프리즈 아시아 VIP & 사업개발 총괄이사 권민주의 설명이다.

오늘날 프리즈는 런던, 뉴욕, LA 그리고 서울에서 열리는데 모든 페어에 ‘포커스’ 섹션을 두어 신생 작가의 발견을 강조한다. 특히 프리즈 서울에서는 ‘포커스 아시아(Focus Asia)’라는 섹션을 마련해 아시아 기반으로 2011년 이후 설립된 갤러리의 작가 열 명의 솔로 부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섹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동시대 미술에 새로운 감각을 수혈하는 이머징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집중해서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견 작가나 거장에 비해 가격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포커스 아시아에서 소개되는, 오늘날 가장 전도유망하다고 평가받는 갤러리와 작가는 다음과 같다.

유타카 키쿠타케 갤러리는 지난봄 광주 비엔날레에서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선보여 호평받은 일본 작가 유코 모리의 사운드 변환 작품을, 실린더 (Cylinder)는 제단화를 탐구한 유신애 작가의 새로운 회화 작품 시리즈를, 싱가포르 갤러리인 여 워크샵(Yeo Workshop)은 동남아시아 플랜테이션 역사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3D애니메이션과 게임 엔진 소프트웨어로 제작한 프리야기타 디아(Priyageetha Dia)의 신작을 소개한다. 프리즈 서울은 “신진 작가에게 소중한 지원 기회를 제공하고 글로벌 무대에 존재감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제1회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 서울을 신설하고 우한나 작가를 선정한 바 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 루벤 키한(Reuben Keehan) 퀸즐랜드 미술관 현대 아시아미술 큐레이터 등으로 이뤄진 어워드 심사단은 “여성성에 관해 세심하게 고민하며 통념을 깨는 조각의 세계를 여는 우한나 작가의 매혹적인 패브릭 설치 작품을 지지한다”고 선정의 변을 밝혔다. 이에 우한나 작가는 지 갤러리 부스에서 특유의 비비드한 컬러의 패브릭을 활용해 여성 신화에 관한 전복적인 조각 설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키아프 서울 역시 이머징 아티스트들의 예술 세계를 소개하는 섹션을 마련했다. 키아프 서울은 2022년 론칭한 ‘키아프 플러스(Kiaf PLUS)’ 섹션을 위해 공간을 확보했다. 이 섹션은 젊은 작가, 젊은 갤러리와 더불어 전통적 개념의 미술뿐 아니라 뉴미디어 매체를 강조하며, 성장하고 있는 동시대 미술의 역동적인 신을 소개하고자 마련했는데, 2022년에는 학여울역 세텍에서 진행한 탓에 찾아가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페어의 메인 홀과 바로 연결되는 코엑스 그랜드 볼룸에서 개최해 더 많은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이돌급 마니아를 거느린 작가들이 소속된 갤러리가 참여할 예정이라 기대를 모은다. 제임스 진, 그라플렉스, 백향목, 샘바이펜, 노브라(N5bra) 등이 소속된 갤러리 스탠과 장콸, 윤협, 무나씨 등이 소속된 에브리데이몬데이 갤러리가 그곳이다. 그 밖에 미국의 사라크라운 (Sarahcrown), 스페인의 투스데이 투 프라이데이, 일본의 비스킷 갤러리 등이 함께했다.

지난해 키아프 플러스 전경. (Photo: Kiaf Operating Committee.)

3. 예술 역사의 타임라인을 아우르는 섹션

개인적으로 프리즈 서울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대 유물부터 희귀 필사본과 서적, 20세기 걸작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수천 년에 이르는 타임라인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프리즈 마스터스’섹션 때문이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을 총괄하는 디렉터 네이선 클레멘츠-질리스피(Nathan Clements-Gillespie)는 보도 자료를 통해 프리즈 마스터스의 엄청난 인기에 놀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프리즈 마스터스에 전시된 작품들은 과거의 예술이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페어의 컨템퍼러리 작품들과 상호작용한다. 올해 역시 프리즈 마스터스는 희귀한 고대 유물, 올드 마스터, 지난 세기의 아이콘을 전시하여 아시아 관객에게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작품을 접할 독보적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야말로 박물관, 미술관급 작품을 볼 수 있는 22개 부스의 프리즈 마스터스에서 주목할 만한 곳을 일별해본다. 우선 2022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에 동시 참가했던 악셀 베르보르트(Axel Vervoordt)가 올해에는 프리즈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예술품과 골동품 컬렉터이자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악셀과 그의 아들 보리스가 이끄는 갤러리 악셀 베르보르트는 2022년 처음으로 한국 아트 페어에 참가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갤러리 오너가 동양 철학에 관심이 깊어서인지 일찍이 일본 구타이 그룹 작가들이나 한국 단색화 작가를 전문적으로 소개해온 갤러리다. 이번에는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서 BTS의 RM이 자신의 정규 앨범 1집 <Indigo>의 1번 트랙을 헌정하기도 한 윤형근, 공간주의를 창시한 이탈리아 작가 루치오 폰타나 등의 작품과 함께 희귀한 크메르 신상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을 고유의 스타일로 연출해 소개한다. 런던 베이스의 스티븐 옹핀 파인 아트(Stephen Ongpin Fine Art) 갤러리는 드로잉과 수채화가 전문 분야인 만큼 폴 세잔, 헬렌 프랑켄탈러, 루시안 프로이트, 앙리 마티스, 에두아르 뷔야르 등이 종이에 그린 작품을 엄선하여 선보인다. 시카고의 그레이 갤러리는 프리즈 서울의 첫 참가를 기념하며 알렉스 카츠, 데이비드 호크니, 짐 다인 등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대가의 작품을 들고 왔다. 콘라트 피셔 갤러리(Konrad Fischer Galerie)는 프리즈 서울 기간 동안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기획전을 선보인 로렌스 위너의 작품은 물론, 온 가와라(On Kawara), 솔 르윗 등 주요 모더니스트의 작품을 소개한다. 희귀본 전문 갤러리인 피터 해링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필사본과 초기 인쇄 책을 전문으로 하는 레정 뤼미뉘르(Les Enluminures), 닥터 요른 귄터 레어 북스(Dr. Jörn Günther Rare Books) 갤러리 등이 귀한 인류의 보석을 선보였다.

2022 프리즈 마스터스에서 선보였던 닥터 요른 퀸터 레어 북스 부스.

4. 한국 미술의 저력

2023 키아프 서울은 놀라운 성장세에 있는 한국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인 만큼 무엇보다 화려한 라인업에 집중했다. 그 가운데 2010년대부터 전 세계 미술계에 ‘단색화’라는 한국어 명칭의 영문 표기 ‘Dansaekhwa’로 통용되는 단색화 거장의 작품이 다수 출품된다. ‘뜯어내기’와 ‘메우기’라는 독창적인 프로세스로 새로운 차원의 평면성을 탐구하는 정상화(갤러리 현대),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과 2021년 작고한 ‘물방울 작가’ 김창열(표갤러리), 한국 기하추상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서승원(PKM 갤러리), 숯의 물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시적인 작품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이배(조현화랑, 우손갤러리) 등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특히 BHAK에서는 개관 30주년을 맞아 한국 전통 미학의 특성을 현대적 회화 언어로 풀어낸 윤형근 화백의 작품을 회고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5. 서울 그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즐길 때

몇 년 전 프리즈 런던에 갔을 때 도시 전체가 프리즈 위크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런던 시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리젠트 파크에 수십점의 조각을 설치한 ‘프리즈 조각’섹션, 상업 페어라기보다 강렬한 로컬 아트 신을 경험하는 듯했던 ‘라이브’ 섹션 등이 특히 그런 느낌을 주었다. “프리즈는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회와 이벤트를 찾아다니며 도시 그 자체를 예술 작품처럼 탐험하는 ‘프리즈 위크(Week)’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권민주 이사의 말이다. 행사가 열리는 동안 공공 미술관, 상업 갤러리, 비영리 기관 등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도시를 찾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유의미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그녀는 강화된 이번 프리즈 위크 프로그램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선 큰 인기를 끌었던 ‘프리즈 나이트’가 계속된다. 주요 갤러리가 밀집된 한남, 청담, 삼청 세 곳을 중심으로 늦은 시간까지 갤러리, 뮤지엄 등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문화 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밤이 이어진다. 9월 5일에는 삼성 리움미술관, 갤러리 바톤, 리만머핀 등이 참여하는 한남 나이트, 9월 6일에는 글래드스톤, 송은, 아틀리에 에르메스 등이 참여하는 청담 나이트, 9월 7일에는 아트선재센터,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등이 참여하는 삼청 나이트가 펼쳐졌다.

프리즈 서울의 프리즈 필름 섹션이 열리는 네 곳 중 하나인 보안 1942. Courtesy of Boan 1942.

작가들의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 ‘프리즈 필름’ 섹션 또한 서울 비영리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방향성으로 준비했다. 수년 동안 비영리 대안 공간 등에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한 추성아, 김성우 두 사람이 프리즈 필름 섹션을 기획했다. 두 기획자는 한국 동시대 미술의 역동성의 산실인 비영리 독립 공간 세 곳(아마도예술공간, 보안 1942, 인사미술공간)과 서브컬처의 중심에 있는 마더오프라인까지 총 네 곳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인다. “최전방의 비영리 독립 공간을 향한 애정과 존경을 바탕으로 프리즈 서울을 통해 전 세계 관객에게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고 그 공간들과의 연동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했다.” 현재는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인 추성아의 말이다.” 이 프리즈 필름은 남화연, 무진형제, 안정주, 홍이현숙 등 14명에 이르는 작가의 완성도 높은 기존 작업을 ‘발굴’하여 상상적 차원에서 서사를 조명하는 장이 되었다. “특정 주제에 국한하기보다는 비인간, 신체, 이미지와 사회, 집단기억, 삶과 생태환경적 접근, 가상과 현실의 경계 등 그간 아티스트들이 질문해왔던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완성도 있는 영상 작업을 선택했다. 이와 같은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발굴로서의 서사’라는 키워드가 도출됐다.”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페어가 시작하기 전인 8월 22일부터 9월 9일까지 열렸기 때문에 평소 관심 있는 작가의 영상 작품을 안락한 공간에서 집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art columnist Ahn Dong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