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tm> 창간호의 커버는 아티스트 김영진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얼굴 전체를 가리고도 남을 커다란 책을 집중해 보고 있는 여인의 초상. 그림 속 책의 내용을 궁금해 하듯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ertm>을 궁금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자신을 ‘페인터’로 소개하는 아티스트 김영진

ertm 창간호 커버를 장식한 그림의 제목은 김영진 작가의 “13:12:19″다. 오후 1시가 지난 시각, 곱게 가르마를 탄 여성이 커다란 책에 얼굴을 묻고 집중하는 순간을 표현한 그림이다. 책 속의 내용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멋진 풍경화가 담겨 있는지, 가슴 시리는 로맨스 소설 혹은 유혈이 낭자하는 공포 소설이 실렸는지는 미스터리다. 상상은 오롯이 우리의 몫. 과감하고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해보자.

그림 속 여자는 오후 1시 12분 19초에 책을 보고 있다. 어떤 인물, 어떤 모습, 어떤 배경을 상상하며 작품을 완성했는지 궁금하다.

이 작업은 낯선 여행지의 풍경을 시간대별로 구성한 시리즈 중 하나로 한낮의 모습을 표현했다. 내가 떠올린 풍경은 여행지에서 반려견과 함께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알지 못하는 낯선 어딘가의 기록이지만 누구에게나 익숙할 수 있는 장면으로 묘사해 각자의 기억 속 감정을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원작에 표현한 책은 “The Family of Dog”라는 사진집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작가의 지난 작품들을 보니 차분하고 묵직한 컬러부터 팝하고 자극적인 컬러까지 색의 사용 범위가 꽤 넓다.

블랙이나 화이트와 같은 무채색 계열을 좋아한다. 여러 컬러를 쓰는 것도 즐기지만 예전부터 그레이 스케일을 베이스로 색을 채워나가는 작업 방식을 사용한다. 차분하거나 자극적인 컬러 모두 채도를 낮추면 같은 컬러처럼 보이듯이 색만 보면 정반대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베이스가 되는 블랙과 화이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가에게 이런 질문은 조금 실례일 수도 있겠다.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림을 시작한 시기는 너무 어릴 때라 거의 기억이 없다. 아마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 뭐든 곧잘 따라 그렸고 주변의 관심을 받으면 그게 또 신나 계속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그림 외에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작업해야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 일을 평생 지치지 않고 해나가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커다란 성공보다는 작은 성취감을 소중히 여기는 게 중요해졌다. 한결같이 행복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스스로 성공한 작가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작업한 브랜드와의 협업 혹은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궁금하다.

얼마 전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제품 작업에 참여했다. 오랜 시간 사랑받은 상징적인 제품이고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했다. 지금은 기업과 동물 보호 단체, 친구들과 함께하는 유기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나와 함께 지내는 반려견도 구조된 아이였고 워낙 개를 좋아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관련 작업을 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프로젝트에 관심을 주시는 분들의 후원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수영장과 바닷가가 펼쳐진 풍경을 그린 <11:05:13>

그림 그리는 것 외에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가?

최근에는 웰니스에 관심이 많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거나 마음을 다스리고 주변을 정리하는 일을 꾸준히 공들여 하고 있다. 작업하지 않는 시간엔 대부분 그런 것에 빠져 있다.

앞으로 협업하고 싶은 분야나 작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와 관련된 작업을 해보고 싶다. 관련 작가와의 협업도 재미있을 것 같고. 미술은 언제나 공간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이 항상 있다.

editor Shin Kyung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