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장식할 세계 각지의 엄선된 디자인 비전, 그리고 이것을 어느 때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평가했을 각 분야의 전문가가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3 최고의 전시를 소개한다.

  • Nomadic Pavilion

2015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온 루이 비통의 노마딕 아키텍처(Nomadic Architecture) 시리즈. 올해는 마크 포네스 (Marc Fornes)의 ‘노마딕 파빌리온’이 공개되었다. 산호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여러 공이 뒤엉킨 듯한 형태의 설치물은 팔라초 세르벨로니(Palazzo Serbelloni) 안뜰의 18세기 네오클래식 양식과 합을 이루어 더욱 빛을 발했다. 양극산화 처리한 알루미늄판 1600여 장을 활용하여 만든 구조물은 가까이서 보면 벽 두께가 1mm가 채 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정도로 얇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로 스며든 햇볕이 파빌리온 내부에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향연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디자인 위크의 일정 속에서 잠시나마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던 공간.
– 공간 디자이너 김종완

  • A Life Extraordinary Desacralized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장외 전시인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는 워낙 좋은 전시가 여러 곳에서 열리다 보니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정보 싸움이다. 외곽에 떨어져 있는 전시장임에도 최고의 촉수를 가진 이들이 리뷰가 좋다는 정보를 입수한 덕분에 동행한 전시인데 역시 최고! 리빙 문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안목이 가구 박람회의 주목적이라면, 이 갤러리의 안목은 예술이 리빙 문화를 구한다는 최종의 목표를 보여준 셈이다. 상업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정교하게 큐레이팅해버려진 성당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듯 연출했지만 각 작품의 개성이 뚜렷해 하나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었다. 가구 브랜드 모오이(Moooi)와 함께한 LG전자의 전시도 아주 기억에 남는다. 모오이의 세계와 LG전자의 제품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녹아들어 전자제품과 작품의 경계를 허무는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왔다.

– 아트 디렉터 서영희

  • Alcova 2023

알코바는 2018년 시작된 디자인 독립 플랫폼이다. 그간 빵 공장, 캐시미어 공장, 군 병원 같은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공간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키며 ‘꼭 가봐야 할 행사’를 만들었다. 특히 올해는 옛 도축장을 베뉴로 삼아 또 한 번 신선함을 안겨준 데다 규모까지 역대급이었다. 공예, 조명, 가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그리고 국제적으로 이름난 작가부터 주목할 만한 신예까지 70여 파트에 이르는 디자이너 및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은 큐레이션도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각기 다른 작품을 날것의 공간에 어울리게 배치한 구성은 또 하나의 디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도였다. 밀라노는 매년 패션 위크와 디자인 위크가 열리는 도시라 자주 방문하는 관람객에게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매년 알코바가 셀렉트하는 장소와 브랜드를 통해 밀라노라는 도시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만나게 되니 매우 흥미롭다.

– 칼럼니스트 이도은

  • Tod’s: The Art of Craftsmanship

모든 전시를 다 둘러보기에는 역부족이라 패션 브랜드 전시 위주로 관람했는데 그중 포토그래퍼 팀 워커와 함께한 토즈의 전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이탈리아 장인 정신을 상징하는 토즈의 고미노 백과 디아이 백(Di Bag)은 팀 워커의 카메라 렌즈를 만나 꿈같은 시너지를 이뤄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한 장인의 여정을 그만의 초현실적인 스타일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거대화된 망치, 브러시, 슈트리 등을 위트 있게 활용한 사진 작품, 커진 도구를 그대로 재현한 대형 전시물, 장인의 메이킹 퍼포먼스 등으로 알차게 구성했다. 슬로 패션의 생존에 이바지하는 가죽업계의 장인을 다소 발랄하게 재조명한 전시 이면에서 점점 가속화되며 낭비가 많아지는 현시대의 생산 과정에 대한 풍자가 느껴져 더욱 마음에 들었다.

– <PAP> 강동민 편집장

  • FuturLiberty

애정하는 런던 리버티 백화점을 밀라노에서 만나 반가웠다. 이 전시에서 리버티가 이탈리아 디자이너 페데리코 포르케(Federico Forquet)와 함께 제작한 원단 시리즈를 만날 수 있었다. 리버티의 전통적인 플로럴 프린트에서 진보한 화려한 기하학 패턴과 재미있고 풍부한 색감 등이 돋보인 전시였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열린 디자인 위크인 만큼 격변하는 사회를 낙관적으로 찬양했던 20세기 이탈리아 미래파 작품을 조명한 점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 아트 디렉터 김예영

  • The Power of Fundamentals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사이즈의 러그. 에르메스 특유의 감각적인 패턴과 컬러를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은 러그로 포문을 열면 그다음은 녹슨 철제 라인이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패턴, 그리고 에르메스답지 않게 완벽하게 마감되지 않은 콘크리트 골조가 눈에 띄었다. 내가 알던 에르메스의 이미지와 상반되게 날것이 주는 신선함과 철제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규모감 때문에 그 속에 전시된 오브제를 찬찬히 뜯어보기도 전에 가슴이 떨렸다. 에르메스 오브제 중 베스트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심을 담자면 앙셀 데르메스(Ancelle d’Herme`s) 암체어를 꼽는다. 덴마크 디자이너 세실리에 만즈(Cecilie Manz)가 디자인한 이 의자는 얼핏 특별한 장식 없는 평범한 의자 같지만 보면 볼수록 원목과 가죽의 온화한 컬러감, 곡선과 직선의 이질감 없는 조화가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고 반갑다. 날것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색색의 컬러와 패턴을 입은 다양한 크기의 블랭킷은 혹독한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스케줄에서 그간 잊고 있던 물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앞마당에 준비된 스낵 카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에르메스다웠다.

– <ertm> 에디터 신경미

  • Loewe Chairs

지난 10여 년간 매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방문하면서 참여 브랜드의 지형도와 전시 트렌드를 취재해왔는데 해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찾는 패션 브랜드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로에베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작으로 꾸준히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찾기 시작한 이래 매년 그 수준과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로에베가 선택한 주인공은 의자다. 전시에 등장하는 30개의 의자는 투박하고 단순한, 서민의 가구로 알려진 스틱 체어로 22개는 앤티크이고, 여덟 개는 스틱 체어 전문 아틀리에가 새롭게 제작했다. 여기에 로에베 장인 정신의 상징인 직조 기술로 가죽이나 라피아, 포일, 펠트 등 다양한 소재를 엮어 리디자인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면서도 높은 공예적 완성도까지 보여준 전시는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시내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전시장 사이를 오가는 미니 셔틀 서비스도 재미있었다.

– 디자인 디렉터 전은경

  • Echoes: 50 Years of Imaestri

갈증에는 뭐니 뭐니 해도 시원한 물이 최고이듯, 포스트 코로나 이후 리빙 디자인의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을 향해 당당히 자신들의 역사를 보여준 카시나 50주년 전시는 매우 큰 여운을 남겼다. 트렌드와 새로움에 전 세계가 열광하지만 그다지 해답을 찾지 못하는 요즘에 마치 큰 질책이라도 하듯, 이 전시는 각 시대별 가구를 빈티지로 보여주기도 하고 당시의 스케치나 스토리를 섬세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번에 헌팅한 장소와의 관계성이나 전시의 구성 방식, 강렬한 조명, 파격적인 프레젠테이션 방식 등이 전혀 올드하고 클래식하지 않았다. 자신감이란 결국 그동안 쌓아온 퀄리티의 레이어와 그 퀄리티를 만들기 위한 시간의 레이어임을 당당하게 보여준 전시였다.

– 건축가 & 공간 디자이너 임태희

  • Marni × LondonArt

패션을 넘어 디자인 위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마르니는 올해 월페이퍼 브랜드 런던 아트와 함께했다. 브레라의 런던 아트 공간은 밝고 활기 넘치는 에너지를 내뿜었고 벽지 시리즈가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층마다 다채로운 컬러의 벽지를 감상한 후 벽지를 활용한 타포린 백을 기프트로 받았는데,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관람하며 얻은 다양한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담기에 제격이었다. 월페이퍼 백을 멘 사람들이 활보하는 복잡한 거리에서 자신의 일행을 확인하고 찾을 수 있는 요소가 되었으니 또 한 번 마르니의 위트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 <ertm> 에디터 이유진

  • Light – Floating Reflection: Ingo Maurer

그야말로 심쿵했던 잉고 마우러 전시. 작은 건 작은 대로, 큰 건 큰 대로 하나같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우아함과 위트, 지성과 과학이 다 들어 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헝클어진 리듬 다발처럼 허공을 삼차원으로 장식하고 간결하고 산뜻하게 긴 곡선을 그리는 제품들을 보자니 잉고 마우러 조명은 공간의 조연이나 화룡점정이 아니라 주연마저 뛰어넘는 공간 그 자체. 근사한 무드, 분위기가 모두 설치 작품이자 생활 예술이다. 제품이 많은 전시를 보면 이건 진짜 좋고 이건 좀 별로다 싶어 자연스레 강약이 생기는데 이 전시는 하나하나 다 매력적인, 이번 디자인 위크의 원 오브 더 베스트(One of the Best).

– <공예+디자인> 정성갑 편집장

  • Shaped by Water

패션과 리빙 브랜드의 전시가 주를 이루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던 구글의 전시. 모두의 일상에 존재하는 물을 주제로 혁신적인 디자인 콘셉트를 선보였다. 세 가지 방으로 구성된 전시에서 구글은 아티스트 래클런 터잔(Lachlan Turczan)과 함께 물의 성질과 질감을 시각화한 드라마틱한 설치물과 연출을 선보였고, 자연이 기술에 줄 수 있는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직설적이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은색 용기 위를 흐르는 소리의 진동에 따라 물의 표면 위에서 시시각각 생겨나는 형태와 라인의 아름다운 변주, 그리고 이것이 웅장한 음악과 함께 천장 스크린에 투사되어 드러나는 영롱한 빛의 패턴은 관람객을 매료시키며 자연이 가진 힘에 대해 일깨워주었다. 특히 마지막 방에서 구글의 디자이너들이 몸소 선보인 시연은 정말 놀라웠다. 그들은 표면장력으로 모양을 유지하는 물방울의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곡선이 스마트 워치에 그대로 적용된 디자인 과정을 보여주었다. 실험에서 재현된 물방울과 실제로 출시된 제품의 모습이 너무 똑같아 둘을 나란히 놓았을 때 구분이 불가능했는데, 둘 중 하나가 실제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관람객이 소스라치게 놀라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친절하고 군더더기 없는 도슨트부터 획기적인 콘셉트의 디자인 콘텐츠까지 구글의 저력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 <ertm> 에디터 김규원

  • Dior by Starck

밀라노 디자인 위크 곳곳에서 열리는 푸오리 살로네 전시는 도처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특히 구비(Gubi)의 가구 컬렉션, 매거진과 마르셀(Marsell)의 전시, 로로피아나(Loro Piana)의 돌탑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각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전시에서는 디올과 필립 스탁의 만남이 가장 흥미로웠다. 미술계의 뜨거운 화두이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몰입형 미디어 아트가 등장했는데 특히 의자가 웅장하고 드라마틱하게 공중을 부유하는 모습을 보여준 프레젠테이션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섬세한 취향이 담긴 패턴의 ‘무슈 디올 암체어’는 우아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필립 스탁이 만들어낸 유려한 곡선과 형태도 조명에 반사되며 인상적인 장면을 그려냈다. 내부 전시장을 나서면 디올의 정원에 초대받은 듯한 공간이 기다렸다. 딥 그린 컬러의 가든 체어와 테이블, 파라솔 아래로 비치는 햇살을 보며 전시장이 마치 휴양지처럼 느껴진 시간이었다.

– <ertm> 에디터 김효빈

editor Kim Kyu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