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ertm은 패션과 아트, 컬처와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
알아보고 싶고, 가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냅니다.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쏟아지는 지금, 급변하는 트렌드를 뒤쫓기보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당대의 맥락을 짚는 색다르고 통찰력 있는 이슈를 소개합니다.

당신이 어느 자리에서도 “이를테면 이런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Editor’s Note
애플이 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한다는 뉴스에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막연히 상상해온 현실과 가상 세계 간 상호작용이 본격화될 날이 머지않음을 보여주는 이 혁신적인 등장은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더 놀랍고 드라마틱하게 바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의 시대를 연 것처럼 헤드셋이 공간 컴퓨팅 시대를 열 테고, 인류가 디지털 시대에 적응한 것처럼 또다시 MR, VR, AR의 세계에서 헤엄치게 될 테니까요.

이런 시대에 매거진 창간이라니, 많은 분이 의아해하실 겁니다. 을 만들게 된 다소 장황한 이야기를,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열린 전시 <포니의 시간>에서 시작해볼까 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포니(Pony)’는 1975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자국 브랜드 고유 모델 자동차입니다. 자동차 불모지였던 나라에서 만든 첫 대량 양산형 모델인 포니는 당시 폭스바겐 파사트와 골프를 디자인한 30대 중반의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에게 디자인을 의뢰해 만든 자동차로 1974년 10월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되면서 전 세계에 그 등장을 알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레전드급 디자인이 그렇듯 지금 당장 007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핸들을 잡아도 손색없을 만큼 모던하고 세련되고 (심지어 전기차 시대를 예감한 디자인이었나 싶을 정도로) 촌스럽지 않은 포니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저의 로망인 포니 쿠페는 그 실용성과 진보적인 디자인으로 전 세계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한국이 자동차 공업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글로벌 마켓에 당당히 알린 아이코닉한 모델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포니 자동차를 타고 새로 나온 잡지며 만화책을 사러 서점에 가곤 했던 날이 저에게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 있듯 포니는 많은 이에게 저절로 그리운 기억을 꺼내 들게 하는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존재입니다. 가족의 첫 패밀리 카, 신혼부부의 첫 차, 직장인의 첫 차였고 가난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던 대한민국에 행복한 ‘마이 카’ 시대를 열어주었으니까요.

그 헤리티지와 아카이브를 돌아보며 포니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전시 말미에 밴드 잔나비를(최근 현대자동차와 협업한 신곡 ‘Pony’를 발표한!) 만났습니다. 잔나비 자체가 장르라는 평을 받을 만큼 어떤 그룹이나 밴드에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음악 스타일, 시인도 울고 갈 만큼 아름다운 가사로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고 있는 잔나비와의 협업은 포니 쿠페만큼이나 이상적이고 신선했습니다. 잔나비 특유의 개성 있는 음악과 포용력,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 능력이야말로 포니가 추구하는 아이덴티티와 결이 비슷하니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만남이 또 있을까요. 심지어 복고적이면서도 유니크한 아웃핏과 스타일까지 닮아 있습니다. 엔진의 성능만큼이나 자동차 디자인이 중요하듯 뮤지션에게 스타일 역시 더없이 중요한 요소지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라이선스 패션지들과 로컬 매거진들이 선전하고 있는 이 시점에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매거진을 창간하는 이유를 감히 포니와 잔나비에 비유해보았습니다. 오랜 패션지 편집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2017년 스피커(speeker)라는 이름의 인플루언서 &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회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분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잡지를 만들고 콘텐츠를 기획하던 사람이 매니지먼트라니, 너무 낯설고 무모한 도전이 아니냐며 염려도 많았답니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던 많은 일이 온라인으로, 디지털로, 인플루언서로 넘어가던 시점이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남모를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제껏 잡지에 소개해오던 멋진 오피니언 리더들과 아티스트들을 직접 매니지먼트하면서 그들의 선한 영향력과 탤런트를 홍보하고 서포트하면 되는 일이었고 제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그 과정과 가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SNS 팔로워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진정성임을 알기에 잠시 주목받고 사라지는 인플루언서가 아닌 오래오래 사랑받고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가 되게 하고 싶었고, 글로벌 마켓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젊고 힙한 아티스트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골든 브리지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도전과 노력이 지난 6년 동안 차근차근 결실을 맺으며 스피커만의 색깔을 만들었고 덕분에 지금은 많은 아티스트와 인플루언서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 7월, 그 아티스트와 인플루언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출발은 소박하지만 디지털 콘텐츠와 플랫폼으로, 또 갤러리와 팝업 스토어로 스피커의 DNA를 무한 복제, 무한 확장할 예정입니다.

아티스트들과 함께 만들어갈 첫 커버에는 스피커 소속 페인터 김영진과 패션 브랜드 플랜씨(Plan C)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롤리나 카스틸리오니와 조각가 리비오 카이울로의 협업을 담았습니다. 어떤 테마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할 것도 없이 의 시작은 다이내믹한 한국 패션 신을 조명하는 기획으로 출발합니다. K-팝과 K-컬처가 전 세계를 홀리고 K-셀러브리티들이 글로벌 패션 마켓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금, 오랜 시간 뚝심 있게 K-패션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 우영미와 준지를 비롯해 MZ세대의 응원을 받으며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신진 브랜드들까지 70개의 브랜드를 직접 찾아가 만났습니다.

포니가 그랬듯이 브랜드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 라벨을 달고 전 세계에 K-패션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시작은 부끄럽고 부족하나 역시 포니처럼, 잔나비처럼, 그리고 우영미처럼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지닌 브랜드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첫번째 편집장의 글을 마칩니다.

*P.S. ‘ertm’은 speeker의 ‘er’과 트레이드마크의 약어인 ‘tm’을 합친 단어로 ‘voice of speeker’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editor-in-chief 전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