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소품, 서적, 가구로 꾸며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승건의 공간은
그의 명확하고 담백한 취향과 성격을 가늠케 한다.

처음으로 남자 모델에게 여성 컬렉션을 입혀 촬영했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가?
어느 순간 젠더리스(Genderless), 맨즈 웨어, 우먼스 웨어와 같은 표현에 공감되지 않았다. 세상이 변하고 있지 않나. 여자가 남자 옷을 입고 남자도 여자 옷을 입을 수 있는 시대다. 아름답고 멋진 옷은 성별과 상관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을 아주 조금 바꿨을 뿐이다. 이번 시즌 주제인 ‘Humanswear’의 의미와 취지도 심플하다. 성별과 관계없이 인간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옷을 표현하고 싶었다.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
주머니! 옷은 어떤 애티튜드로 입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전혀 달라진다. 디자이너는 옷뿐 아니라 스타일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옷을 입는 사람이 어떤 애티튜드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낼지 끊임없이 상상하며 작업한다. 그들이 편안해 보였으면 좋겠고, 푸시버튼 옷을 입을 때 여유로움이 느껴지면 좋겠다. 그렇다면 디자인에 어떤 요소가 필요할지 고민했는데 주머니만 한 것이 없었다. 패션쇼를 할 때 모든 모델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워킹한 적도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 나오는 나른함과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하면서 소위 말해 ‘감’을 잃지 않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어떤 노력을 하는가?
눈과 귀, 마음을 모두 열어놓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고루한 대답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디자이너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각종 커뮤니티나 채널이 많아져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많다. 내가 어떤 채널을 통해 어떤 내용을 나눌지 선택이 가능한 시대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브랜드가 젊어질 수도, 지루해질 수도 있다. 요즘 세대가 원하는 문화적 기류, 사고방식, 트렌드 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패션은 특히 젊은 세대가 주도할 수밖에 없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잘 귀담아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베이징, 홍콩, 파리, 런던 등 해외에서도 꾸준히 성과를 올리고 있다.
솔직히 매출이나 세일즈 등 사업적인 부분은 잘 모른다. 확실한 것은, 해외에서 만나는 패션업계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친절해졌다. 파리가 우리에게 이렇게 우호적인 적이 있었나 싶다. 이전에는 해외 쇼룸을 벗어나면 우리 의상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에는 해외 출장지에서 내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간혹 먼저 사인해 달라는 사람도 있고, 본인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협찬이나 구매를 문의하는 인플루언서도 많다.

패션쇼를 하지 않은 지 몇 년 됐다. 런웨이에 갈증은 없나?
감사하게도 그동안 국내와 해외에서 많은 쇼를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패션쇼를 묻는 거라면 그에 대한 갈증은 없다. 브랜드를,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해 꼭 쇼라는 형식을 따르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새로움’이 미덕인 시대 아닌가. 푸시버튼이 가장 잘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패션 이외에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나?
공간 꾸미는 일을 좋아해서 시간 투자와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아틀리에가 직원들이 일하면서 자신의 취향이나 감도를 새롭게 찾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아틀리에 내의 모든 가구는 관상용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쓰라고 두는 거다. 피곤하면 누워 한숨 자도 되고 도시락을 먹어도 좋다. 공간 꾸미기는 취미 생활이자 영감을 받는 활동이며 직원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일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좋아야 허물없는 소통이 가능하고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믿는다.

디자이너가 안 됐더라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나?
아마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것 같다. 패션에 너무 관심이 많아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안달 나 있고, 어떤 형태로든 패션 디자이너를 향해 가고 있는 인생.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은가?
시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할 줄 아는, 그래서 언제나 동시대적인 디자인이 가능한 디자이너!

photographer Jang Dukhwa, Na Sodam (인물 및 공간)
editor Shin Kyungmi
model Chae Jongsuk
hair Kim Junghan
makeup Oh Gayoung
stylist Totomimilala
nail Kim Suji
assistant editor Kim Soojin, Yoo Song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