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더 빨리 노르딕 커피의 맛을 탐험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하나 믿고 떠난 카페인 과다 섭취 여행.

뜨거운 햇빛도 아랑곳하지 않고 테라스에서 커피 타임을 즐기는 오슬로 사람들.

부루마블에도 등장하지 않은 도시 오슬로에 대해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속으로>오슬로 편도 본 적이 없었다. 오슬로보다 더 멀고, 오슬로보다 훨씬 안 유명하고, 오슬로보다 더 시골인 트롬쇠(Tromso)에 사는 친구를 보러 갔다가 도시의 매연과 소음으로 친구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오슬로에 함께 간 거였다. 물론 오슬로에 매연과 소음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대신, 한국인 관광객이 뻔질나게 줄을 서는 도쿄 푸글렌(Fuglen) 카페의 원조가 거기에 있었다. 그래, 이거면 됐다. 집에서 본인이 만든 맛없는 커피를 매일 마시는 친구의 욕망도 채울 수 있고, 나의 과시적인 힙스터력도 채울 수 있었다. 발음도 어려운 Universitetsgata 2에 위치한 푸글렌에 도착하자 서울의 커핀그루나루보다도 사람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1960~1970년대풍의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로 장식한 내부는 어찌나 멋스러운지. 흉내 낸 레트로 콘셉트가 아니었다. 진짜 레트로였다. 푸글렌은 놀랍게도 우리가 다방 커피를 마시던 1963년부터 시작했다. 그야말로 노르딕 커피의 시작인 푸글렌은 신맛 위주의 가볍게 로스팅한 커피를 추구하며 과일, 꿀, 꽃 향을 낸다. 도쿄 푸글렌이 아닌 오슬로 푸글렌을 가봤다고 서울 가서 자랑할 생각 때문인지,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해서 노르딕 커피를 좀 더 탐험하기로 했다. 이럴 때 나의 바이블은 <뉴욕 타임스> 아니면 <가디언>이다. 오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이 두 매체는 여행, 식문화 등에 대해서도 수준 높은 큐레이션을 보여준다. <뉴욕 타임스>는 오슬로를 새롭게 떠오르는 커피 성지로 언급하면서 푸글렌뿐만 아니라 팀 벤델보에 (Tim Wendelboe), 자바 에스프레소 & 커피(Java Espresso & Coffee), 모카(Mocca), 슈프림 로스트워크(Supreme Roastworks), 스토크플레트스(Stockfleths)를 꼭 가보라고 했다. 그도 아니면 도시 곳곳에 있는 카페브레네리에트(Kaffebrenneriet)라도. 마틴 맥도나 감독의<킬러들의 도시> 속 두 형사처럼 지루한 도시에 발이 묶인 채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모습을 예상했는데 오슬로가 이렇게 커피로 힙한 도시였다니. 감사합니다, <뉴욕 타임스>대기자님. 속 쓰린 것도 모르고 카페인을 열심히 섭취하러 다녔다. 이럴 때 갑자기 나오는 한국인의 근성으로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갔다. 노르딕 로스팅의 섬세한 풍미와 함께 기억나는 건, 밥벌이 스트레스가 없어 보이는 여유로운 분위기와 디즈니 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친절한 직원들이다. 부장님과 통화하면서 “네넵” 하는 손님, 커피 잔을 앞에 두고 30장씩 사진을 찍는 인플루언서, “고객님, 죄송한데 DM으로 문의 주실게요”, “고객님, 죄송한데 자리 이동은 불가능하세요”, “고객님, 죄송한데 일행 다 오면 착석하실게요”라고 말하는 직원이 없어서 더 좋았나.
업무량이 많아 급하게 허겁지겁 마시는 서울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아니라면, 커피는 어디에서든 어떤 형태든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호텔 조식 테이블에서 웨이터가 서빙해 주는 밍밍한 커피도 좋고, 일본 편의점에서 대충 집어 든 쓴맛 나는 캔 커피도 좋고, 포틀랜드에서 플란넬 셔츠를 입고 턱수염을 기른 바리스타가 까다롭게 내려주는 스페셜티 커피도 좋다. 그래도 원고를 쓴 김에 오슬로 커피 투어가 특별히 좋았던 점을 꼽아보자면, 화성보다 더 따분할 거라고 생각한 도시에 커피 문화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 커피에 곁들인 시나몬 번과 브리오슈, 브라운 치즈 토스트가 맛있었다는 점, 그리고 사진 찍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점, 서울에 있는 그 누구보다 먼저 이 투어를 했다는 점이다. 여행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잠깐의 여유는 사지만 영원한 여유는 못 사는 것.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오슬로의 한 공원.

columnist Nah Ji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