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남서부의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Hauser & Wirth Somerset)에 다녀왔다. 작은 시골 마을에 문을 연 갤러리와 호텔이 전 세계의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고즈넉한 중세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소박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흘을 머물고 나서야 왜 이곳이어야 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에 있는 피에트 우돌프의 파빌리온 건축물.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 시대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자연과 예술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매우 거친 생각을 하게 되었다.
“Nature and art will save us!”

비가 쏟아지는 영국의 시골 마을 기차역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무작정 달려가서 껴안은 채 되지도 않는 영어로 연신 외쳤다. “You saved me!” 그도 그럴 것이, 일정이 변경되어 본래 예정하지 않은 곳에 내리게 되었고 그곳부터 목적지까지 걸어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설상가상, 갑자 기 거칠게 내려치는 폭우 속에서 모든 택시 회사는 우리를 데리러 올 수 없다고 했다. 그 거친 빗소리 사이로 나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으니 달려가 “You saved me!” 라고 대답할밖에.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나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이었다. 이곳에 가기 위해 우리는 런던 패딩턴 역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을 달려갔다. 최종 목적지인 브루턴 역(Bruton Station)에 가려면 기차를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기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런! 작은 마을의 기차역은 출입문이 열리는 차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눈앞에서 내가 내릴 역을 놓친 채 그렇게 기차는 달려갔다. 다음 역에서 돌아가려 했지만 그날 브루턴 역으로 가는 기차는 더 이상 없었다. 내가 원하는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두 번째로 가까운 역에서 내렸다. 안도하는 마음이 들기도 전에 우박처럼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에 전화해 “나를 구해주세요~”라고 더듬더듬 말하는 것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준 그녀는 그 순간 분명 우리의 구세주였다. 이 자리를 빌려 어디 역인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는데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단번에 찾아와준 하우저 앤드 워스 스태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갤러리의 동선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뒷마당으로 이어진다.
갤러리 또한 오래된 민가를 레노베이션해 만들었다.

차로 25분 정도 걸리는 우리의 목적지 서머싯으로 달렸다. 차창 너머 풍경을 보면서 택시가 왜 오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거친 비가 조금 잠잠해지면서 평화로운 영국의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어느 박물관에서 본 듯한 전원 풍경이 화첩이 넘어가듯 지나갔다. 어느덧 차분해진 비처럼 내 마음도 차분해질 무렵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에 도착했다. 그 안에 있는 ‘더슬레이드 팜하우스(Durslade Farmhouse)’라는 스테이에서 2박을 하는 것이 이번 여 행의 목적이었다. 오래된 석조 건물로 다가가 삐걱거리는 문을 열자 소박한 농가 주택의 방마다 서로 다른 아트 작품이 걸린 모습이 보였다. 매우 아날로그하면서도 매우 섬세한 예술 감각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우리는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고 갤러리 투어를 하기로 했다. 스태프가 간단한 안내를 곁들이며 부엌에 있는 빵과 우유, 버터, 달걀, 사과를 편하게 먹어도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우유의 색깔이 이상했다. 노란색인 데다 표면에 떠 있는 지방이 마음에 걸렸다. “이거 혹시 상한 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보자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아침 갓 짠 우유예요. 신선하기 때문에 이렇게 보여요. 한번 마셔보세요.” 맛까지 표준화되는 요즘 세상에 그토록 순수하고 자연 그대로인 우유는 처음 먹어보았다. 물론 그지없이 맛있었다. 순수한 자연이 이색적으로 보인 것도 어쩌면 평생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하우저 앤드 워스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취히리, 런던, 홍콩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알프스의 휴양도시 생모리츠와 뉴욕 롱아일랜드의 사우샘프턴에도 화랑을 개설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은 2014년 영국 남서부 서머싯의 농장과 건물을 사들여 자연과 예술, 농장과 호텔을 아우르는 대규모의 전원 갤러리로 조성했다. 면적이 25만 평에 달하며 총 다섯 동의 건물이 있는데 모두 기존의 농가를 증·개축했다. 갤러리, 교육시설, 레스토랑, 호텔, 작가 레지던스, 책방과 팜하우스 숍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특히 정원은 나의 발길을 이끈 곳이다. 이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정원가라 할 피에트 우돌프(Piet Oudolf)가 설계한 정원과 파빌리온을 우연히 영상으로 본 후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가운데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습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정원을 꼭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갤러리 내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는 모습을 보며 스태프는 교통이 그리 편하지 않는 시골에 하우저 앤드 워스 갤러리가 생기는 것을 모두 우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연을 새롭게 느끼고 역사가 창조한 작은 마을을 경험한다. 도시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이 빚은 기적과 같은 의미를 생각하게 된 다. 그 가운데에서 만나는 예술은 많은 영감을 준다. 특히 하우저 앤드 워스는 단순한 갤러리를 떠나 환경 보존, 탄소 배출, 기후 문제, 그리고 로컬 문화와 지역 주민의 공존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실행하고 실천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갤러리가 보여준 행보와 정반대로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전원 속으로 들어가 갤러리를 구축한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범람의 시대에 우리를 구원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에 영감을 받을 것인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 시대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자연과 예술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매우 거친 생각을 하게 되었다. 2박을 보낸 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을 뒤로하고 그곳을 떠나오며 마지막으로 이 말을 떠올렸다. “Nature and art will save us!”

writer Lim Tae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