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킴이라는 브랜드 이름의 의미가 궁금하다.
서로 같지 않고 다름을 의미하는 한글 ‘차이’에서 따왔다. 우리 사회는 남들과 다르면 굉장히 불안해하고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있는데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이고 내가 입는 옷이지 않나. ‘차이킴’이라고 이름 지은 또 다른 이유는 디자인은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 하나에서 완성도가 달라진다. 우리 옷은 다른 브랜드의 디자인과 ‘차이’ 있게 만들고자 내 성인 ‘김 (Kim)’과 ‘차이’라는 단어를 합쳐 만들었다.

현대 복식의 드레스와 한복이 결합된 차이킴의 드레스는 국내외에서 모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런 특별한 한복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 패션은 시의성을 지닐 때 그 효용과 매력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계승한 디자인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결혼식, 돌잔치, 명절 때만 입는 한복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이질감 없이 어울리는 한복을 만들고 싶었고, 특별한 날 서양의 드레스가 아니라 우리네 한복을 특별하게 입을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지나지 않고 계속해서 한복을 입어왔다면 현재 어떤 방식으로 옷을 입었을까 상상해봤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색채, 소재, 실루엣 등이 있었다.

최근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과<앙금당실 토별가>의 의상 디렉터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의상 디렉팅을 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시대적 배경부터 등장하는 캐릭터의 분석,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다각도적 고민 등 시간과 노력을 크게 요하는 작업이다. 작업할 때는 나 역시 많이 힘들다. 하지만 하고 나면 이 작업 과정이 나에게 큰 자산이 된다. 작업을 통해 알아가는 여러 경험과 지식이 씨앗이 되어 내 시야를 넓혀 주기도 하고,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보면서 배우로부터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앙금당실 토별가>는 어렴풋이 상상되는데 <베니스의 상인들>은 서양 고전이 아닌가. 어떤 의상을 보여줄지 대단히 흥미롭다.
그래서 재미있는 거다.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작업이지 않나. 상상의 한계가 없는 작업이다. 우연의 일치랄까. 작년에 베니스 비엔날레를 갔는데 당시 베니스에 굉장히 동양적인 요소가 많다고 느꼈다. 베니스가 항구도시라 동서양의 문물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라 그랬던 것 같다. 한복은 평면 재단이고 서양 옷은 입체 재단이다. 두 방식을 어떻게 조화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다. 한복 디자인을 하기 전에 다양한 서양 브랜드를 경험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차이킴에 대해 말할 때 소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지안비코라는 남자 슈트 브랜드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후 이탈리아 브랜드 브리오니, 체르티 등에서 일했고. 슈트는 소재가 매우 중요한데 그때 다양한 소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이 한복 디자인에 중요한 도움을 많이 준다. 내가 처음부터 한복을 시작했으면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소재를 선택할 때 원칙이 있다면?
공연 의상이 보통 100여 벌이다. 물론 공연 때 반복해 입기도 하지만 완전히 막을 내리면 의상은 버려지게 된다. 그 죄책감이 상당하다. 소재는 자연으로 회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잘 썩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폴리에스테르, 레이온 등의 가공 섬유는 사용하지 않는다.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옷을 만드는 사람은 안다.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소재를 만지는데 천연 소재와 가공 섬유는 전혀 다르다. 디자이너로서 축복일 수도 있고 형벌일 수도 있는데 나는 거의 리트머스 종이다. 굉장히 예민하고 촉각, 후각, 시각적으로 유별난 편이다. 내가 허용할 수 없는 소재, 내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 소재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차이킴의 시그니처 철릭 드레스.

차이킴의 시그니처인 철릭 드레스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전통적인 한복을 입을 때 예쁜 체형이 있다. 어깨가 비스듬히 내려가야 하고 가슴이 조금 납작해야 태가 난다. 나는 체형과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원했다. 철릭 자체가 남자 한복이라 체형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처음 한복을 배울 때 철릭의 자잘한 주름이 너무 예뻐 보여서 여자 한복인 줄 알았다. 출토 복식의 실제 유물에서 패턴이나 재단 같은 것을 연구하게 되는데 과거에는 지금보다 체형이 작았기 때문에 남자 옷인데도 여자 옷으로 착각했던 거다. 모시로 촘촘하게 주름잡은 철릭을 보고 여성복으로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차이킴을 개량 한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차이킴은 ‘패션 한복’이 다. 이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만든 게 철릭 드레스다.

차이킴은 어떤 고객이 주로 찾나? K-컬처, K-팝이 붐을 일으키면서 외국인 고객도 많을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의외로 패션을 굉장히 잘 알고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다. 한류 문화 열풍 때문에 일시적으로 찾기 보다는 원래 패션을 전공했던 사람들, 외국 관광객 중에서도 패션을 전공한 친구들이 종종 찾는다. 일전에 한 고객이 쇼룸을 찾았는데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학생이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교수가 한국을 가면 차이킴 쇼룸에 가보라고 추천했다고 들었다.

인생을 한복에 비유하기도 한다. 배냇저고리, 색동저고리, 혼례복 그리고 마지막 수의까지 인생의 단계와 유사하다. 지금 디자이너 김영진은 어떤 한복을 입고 있나?
어려운 질문이다. 정확히 어떤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수의를 준비하고 있는 시기쯤 되지 않을까. 우리 나라에서 수의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가 있다. 수의를 만들어 놓으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도 있고. 내가 입고 싶은 수의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50세가 지나면 인생을 거꾸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만하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 수의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게으른 나를 채찍질할 수도 있을 것이다.

editor Shin Kyungmi